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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의 영화관/별당의 영화평론

[영화 평론] 28주 후(2007), 무섭지 않은 좀비, 흐지부지한 결말

28Weeks Later

영화 <28주 후>

 

감독: Juan Carlos Fresnadill
주연: Robert Carlyle, Rose Byrne

영국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진 후 돈과 앨리스는 생존자들과 함께 시골집에서 동료들과 살아간다. 하지만 감염자 무리를 피해 찾아온 어린아이와 함께 감염자가 집에 들이닥친다. 앨리스는 아이를 지키려 하지만 돈은 두려움과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앨리스와 아이를 구하지 않고 있는 힘껏 도망치고 결국 혼자 살아남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좋았다. 두려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 사람의 복잡한 표정이 돈의 얼굴에 잘 담겨 있었으며, 감염자들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 또한 감염자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주인공의 긴박함을 잘 표현하였다. 유명한 배경음악 또한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렸고 영화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여기까지였다. 

바이러스가 퍼진 지 5주 후, 감염자들이 기아로 인해 모두 죽자 사람들은 런던을 재건하기 위해 미군을 중심으로 NATO군을 파견한다. 돈의 아이들인 태미와 앤디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순간 분노하지만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남매는 어머니가 그리워 어머니의 사진을 찾기 위해 안전지대 밖에 있는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살아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어린애들이 아무리 철이 없더라고 안전지대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어머니의 사진을 가지러 밖으로 나가는 게 설득력이 없었다. 영국 도착 전부터 절대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아무리 영국의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도 런던이 초토화되는 사건이었는데, 경고를 무시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간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아이들이 사진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앞에 잘 그렸더라면 모르겠지만 고작 어머니의 사진을 구하러 그 위험한 곳으로 스스로 걸어간다. 그리고 탈출 방법도 다른 샛길로 나가는 것도 아니라 군인이 보초를 서는 다리 아래로 기어가는데 이 과정이 너무 쉽게 묘사되는 것도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감시를 소홀히 할 거면 보초는 왜 서며 저격수가 발견했는데도 두 남매가 런던 시내를 활보하게 놔뒀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또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에서 벌레를 통해 혐오감을 조성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런 모습이 자주 보여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남매가 탈출하는 것을 본 도일 상사가 지원요청을 하여 남매와 어머니는 안전지대로 귀환한다. 귀환 후 스칼렛 소령은 앨리스의 피를 검사하게 되고, 그가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돈은 아내를 버리고 간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앨리스를 찾아간다. 앨리스는 돈을 용서하고 키스를 하지만  키스 도중 돈이 감염되고, 돈이 앨리스의 눈을 찔러 앨리스를 죽이다. 그렇게 돈으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는 안전지대에 퍼지게 되고 안전지대를 폭격으로 초토화했음에도 감염자들은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버린다.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디테일을 놓친다. 단순 관리자라고만 설명된 돈이 지하 실험실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점, 봉쇄된 공간이 알고 보니 봉쇄되지 않았던 점은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군인들은 감염자가 발생하자 매뉴얼에 따르듯이 사람들을 지하로 대피시킨다. 만약 감염자 발생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다면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사람들을 안전하고 봉쇄된 공간에 보호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분명히 공간이 밀폐된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감염된 돈이 지하의 다른 문으로 들어온다. 결국 군인들은 감염자 소재 파악도 못하고 민간인을 지하로 밀어 넣어 감염자 확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거나 아무런 매뉴얼도 대책도 없었던 것이다. 이 안전지대 지하에서 돈에 의해 감염자가 퍼지는 장면의 연출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에서의 아비규환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지만 어두운 화면과 흔들리는 카메라에 의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28주 후>는 특이하게도 지하에서의 장면이 많은데 지하의 특성을 잘 살리지 못했다. 사람의 시야가 차단된다는 점을 잘 살렸다면 더욱 긴장감을 줄 수 있었겠지만, 총에 달린 야시경과 한정된 조명을 통한 연출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설정 붕괴와 설득력 없는 오마주도 영화의 완성도를 낮춘다. 감염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과 같이 치명상을 입으면 죽는다는 설정은 반 토막이 난 시체들이 생존자들을 쫒는 장면에서 깡그리 무시된다. 또한 돈이 목표를 특정하여 공격을 가하는 장면에서 감염자에게 인간일 때의 기억과 감정이 남아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관객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눈을 찌르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죽이거나 제압하는데, 이는 전작 <28일 후> 오마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눈을 찌르는 장면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28일 후>에서 눈을 찌르는 장면은 감염자와 인간의 모호성, 감염자의 폭력성이 본래 인간에게도 내재하는 폭력성임을 담아내는 명장면이지만 <28주 후>에서 눈을 찌르는 장면은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잔인한 장면으로밖에 사용이 안 된다. 

도일 상사와 스칼렛 소령 덕분에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온 태미와 앤디는 항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앤디를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쫒는 군인들과 감염자들을 피해 달아난다. 태미와 앤디를 살리기 위해 도일과 스칼렛은 죽게 된다. 그 둘의 희생으로 접선 장소인 경기장에 도착한 태미와 앤디는 플린 준위의 헬리콥터를 타고 프랑스로 탈출한다. 그런데 갑자기 앤디가 탈출한 지 28일 후, 프랑스에도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암시하는 컷이 나오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 차기작으로 노리고 넣은 마지막 씬이겠지만 갑자기 태미와 앤디가 타고간 헬기가 추락한 것처럼 묘사되고 프랑스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장면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영화 내내 탄탄하지 못한 스토리와 전개로 실망을 줬는데 차기작 예고까지 영화 마지막에 해버리면 정말 정이 뚝 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아무런 완결성을 주지 못하면서 영화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8일 후>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좀비에 대한 공포도 있었지만, 인간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며 인간의 두 본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을 잘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기대치를 크게 못 미친다. 전작이 담아냈던 분노에 대한 고찰과 인간성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했다. 액션, 좀비 영화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좀비에게 쫓기는 게 전혀 긴장되지 않고, 결과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절반을 차지하는 두 군인과 남매의 탈주극도 개연성이 없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별!점: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