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당의 영화관/별당의 영화평론

[영화 평론]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걱정을 떨쳐 버리고 폭탄을 사랑하게 된 이유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포스터

감독:감독: Stanley Kubrick 
주연: Peter Sellers, George C. Scott

 

블랙코미디의 매력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희화화하는 데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를 웃음으로 풀어내어 관객들에게 더 잘 전달되게 한다. 따라서 블랙 코미디를 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느꼈던 즐거움과 반대로 영화를 끝난 후에는 찝찝한 감정을 갖고 영화관을 떠나게 된다. 사실 최근 블랙 코미디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없다. 우선 블랙 코미디는 자체가 만들기 힘든 장르이다. 블랙 코미디는 현실을 비꼬는 풍자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감독이 사회 문제에 대해 잘 알고 그 문제를 비꼴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최근 블랙 코미디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사회 계급의 문제를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유머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기생충>은 분위기의 변주를 통해 코미디와 스릴러를 모두 합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전 세계의 문제였던 냉전에 대해 오로지 코미디로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장된 연기와 센스 있는 대사로 관객들을 웃게 만들면서도 핵전쟁을 통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상호확증파괴의 모순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영화는 미 공군 폭격비행대의 지휘관 잭 리퍼 장군은 비상 작전 계획인 '작전계획 R'을 발동하며 시작한다. '작전계획 R'은 소련이 미국을 상대로 핵공격을 감행했을 때 이에 대한 보복 및 자위를 위한 계획이다. 작전을 하달받은 B-52 폭격기들은 즉시 소련에 핵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소련 영토로 날아간다. 하지만 사실 소련의 핵공격은 없었으며 평소 공산주의를 혐오하던 잭 리퍼 장군이 성관계 중 무력감을 느끼자 소련이 물에 불소를 풀었다는 음모론에 빠지고 소련을 멸망시키기 위해 작전을 발동한 것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다. '작전계획 R'은 하급장교도 발동할 수 있으며 발동한 장교만이 알고 있는 비밀 코드를 알아야 폭격기들과 무전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조차 이 작전을 멈출 수 없었다. 이에 참석한 버크 장군은 이참에 소련과 전쟁을 일으켜 단번에 승리하자는 계획을 내지만 대통령은 이에 반대하고 소련 대사를 전쟁 지휘본부에 초청하에 대안을 찾는다. 대사의 도움으로 소련의 서기장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자 버크 장군의 전쟁 주장은 더 힘을 얻는다. 그러나 대사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통해 '둠스데이 머신'이라는 핵폭발 장치가 소련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둠스데이 머신'은 소련에 핵공격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컴퓨터가 핵폭발을 일으키는 기계였고, 만약 이 기계가 작동할 경우 전 세계의 생명체가 죽고 약 100년간은 지하에서 생활해야 했다. 상호확증파괴의 이 기계를 발명했다는 발표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미국 측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핵공격을 멈추는 방법은 리퍼 장군을 직접 찾아 비밀 코드를 알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공수사단이 공군 기지를 공격하고 리퍼 장군은 기지가 함락되기 직전 공격 중지 코드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채 자살한다. 리퍼 장군의 보좌관인 영국 공군의 맨드레이크 대령은 리퍼 장군의 노트에 있는 낙서를 보고 비밀 코드를 유추해낸다. 다행히 맨드레이크 대령의 유추가 맞았고 공격 명령은 철회된다. 하지만 소련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통신 장치가 망가진 폭격기 한 대가 여전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고 폭격기가 ICBM 기지를 폭격하자 '둠스데이 머신'이 발동하면서 핵전쟁이 발발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1964년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이념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자신들의 기술력을 뽐내기 위해 우주 경쟁과 핵 경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각국이 지구를 멸망시킬 만큼의 핵폭탄을 만들었고 영화가 개봉하기 2년 전에는 소련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쿠바에 핵 기지를 건설하다가 중단되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기도 했다. 이렇게 냉전이 한창일 때 핵을 소재로 블랙 코미디를 풍자한 스탠리 큐브릭은 핵폭탄 개발에 열을 올리던 미국과 소련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큐브릭 감독은 매력적인 극 중 인물을 통해 위험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나라를 희화화했다. 모든 배우가 매력적이고 코믹한 연기를 했지만 그중 가장 돋보이던 배우는 피터 셀러스이다. 피터 셀러스는 이 영화에서 1인 3역을 맡았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와 맨드레이크 대령과 미국 대통령을 연기했다. 세 인물 모두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인데 모두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점은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관객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피터 셀러스가 1인 3역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만큼 피터 셀러스는 각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구현해냈다는 의미인데, 이는 아무리 1인 다역이 익숙했던 셀러스에게도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감독의 재치인지 배우의 재치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입에서 영화의 명대사인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가 이 코미디 영화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터 셀러스의 세 인물을 제외하고도 소련에 의해 성욕이 감퇴했다고 믿어 핵전쟁을 일으킨 잭 리퍼 장군이나 고장 난 폭탄 투하 장치를 고친 후 핵폭탄을 타고 로데오 경기를 하는 포즈를 취하며 폭탄과 함께 산화한 콩 소령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조소를 짓게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스탠리 큐브릭의 미래 3부작 중 하나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미래 3부작의 특징은 과학과 시스템에 대한 그의 불신을 보여준다.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나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이 또한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큐브릭의 생각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도 인간의 시스템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나타난다.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작전계획 R'은 대통령이 직접 허가한 작전이었으며, 리퍼 장군이 미 전략공군의 지휘관이 된 것도 과학적인 시스템에 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이다.

 

Dr. Strangelove

사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작중에서 비중이 그리 큰 인물은 아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국의 무기연구개발 국장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과학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이름대로 이상한 걸 좋아하는 미친 과학자이다. 그는 소련의 '둠스데이 머신'이 발동한 후에 인간이 100년 동안 지하에 살아야 하며, 현재와 같은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자 한 명당 여자 열 명씩 지하 벙커에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가장 좋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우성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은 컴퓨터의 시스템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현 상황을 복구, 혹은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무시한 과학적이기만 한 계획을 세우며 이 계획도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결정하게 했다. 이를 확장하여 생각하면 영화 전체 이야기와 맞물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호확증파괴라는 이론 아래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최후 집행권은 컴퓨터에 일임한 상황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제안처럼 아이러니하고 비인간적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지금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이다. 오히려 요즘 영화보다 치밀하고 멋진 영화로 보인다. 그 내용 역시 우리의 위쪽 식구를 생각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지만 시스템과 과학에 인간성을 잃 스탠리 큐브릭 작품은 어려운 영화가 많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시계태엽 오렌지>는 한두 번 보는 것으로 이해가 안 되고, 여러 해석 영상을 봐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혹자는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를 어렵게 만들기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앞선 두 작품보다 직관적인 영화이다. 특별한 상징이나 무거운 스토리가 없지만,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극명하며, 개성 넘치는 코미디와 풍자는 관객이 쉽게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현재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별!점: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