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영화 정보
감독: 이준익
주연: 강하늘, 박정민
러닝타임: 110분
윤동주 시인은 한국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국어 교과서에는 그가 쓴 시가 곳곳에 실려 있고 <서시>의 첫 행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은 모든 한국인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다. 윤동주의 시는 자기 성찰과 그로부터 오는 부끄러움을 주제로 한다. 그는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았던 시대에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못하고 시만 써왔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섬세하고 몰입감 있는 문체로 그 부끄러움에 대해 노래했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친구이자 독립 운동가인 송몽규의 짧은 일생을 비교적으로 보여주며 동주가 느꼈을 자기혐오와 부끄러움을 잘 그려냈다.
동주와 몽규는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은 소학교와 중학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같은 대학을 다녔다. 매사에 결단력 있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몽규와 달리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동주는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함께 연희전문대학(연세대학교 전신)에 입학한 동주와 몽규는 그곳에서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을 성숙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서로 조금 어긋난 행보를 보인다. 동주가 정지용 선생을 만나고 여러 시를 쓰며 시인으로서 꿈을 향해 달려갈 때 몽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이런 몽규가 독립 운동으로 옥살이를 하고 감찰까지 붙자 둘은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몽규는 교토제국대학에서 서양사를, 동주는 릿쿄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다. 일본에서도 둘의 행보는 조금씩 엇갈린다. 동주가 대학교에서 다카마쓰 교수와 쿠미를 만나 시인의 꿈을 키워가던 사이 몽규는 교토제대에 재학 중인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몽규의 모임이 일본의 비밀경찰에 의해 들키게 되고 동주 역시 비밀경찰에 잡히게 된다.
몽규는 항상 동주에게 "너는 계속 시나 써"라며 자신이 꾸미는 일에 동주를 껴주지 않는다. 동주는 항상 함께하자던 몽규가 자신을 적극적인 독립 운동에 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하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동주의 모습은 그가 시인이라는 자신의 꿈과 적극적인 독립운동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는 그의 근본적인 욕망과 청년으로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하야 한다는 사실 속에서 동주는 시를 선택한다. 그는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자신이 실천적으로 행동하지 못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부끄러움을 원동력으로 시를 썼다. 그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바로 <쉽게 씨워진 시>이다.
<쉽게 쓰여진 詩>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최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속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쿠미의 말처럼 윤동주의 시에 쓸쓸함 묻어있다. 아마 그 이유는 자신이 가려는 길이 너무나도 애매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친일 혹은 반일로 갈리는 세상, 아름다운 꿈을 꾸지 못하는 시대에 시를 써보겠다는 자신의 꿈은 이도 저도 아닌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쓸쓸함과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몽규가 비밀경찰에게 집회를 들킨 이후 동주와 함께 도주하자고 제안했을 때 동주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을 꿈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고마워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강하늘의 연기는 윤동주의 시를 향한 순수함과 그로 인한 무력감을 잘 연기해냈다. 강하늘이 초반부에 밝게 웃던 모습은 시를 향한 그의 순수한 동경을 잘 보여줬고, 후반부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진이 빠진 모습은 적극적인지 못한 자기 혐오를 잘 보여준다. 몽규를 동주와 함께 비교한 각본 역시 효과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백서에 서명을 하는 몽규와 서명을 하지 않는 동주의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동주의 부끄러움이 극대화되는 동시에 그 부끄러움의 원인인 일제의 탄압과 자신의 소심함을 향한 분노 역시 드러난다. 몽규를 연기한 박정민 역시 열정이 넘치는 독립 운동가를 잘 표현해냈다.
영화 <동주>는 담백한 영화이다. 흔히 알려진 윤동주의 성격처럼 영화는 간결하고 섬세하다. 흑백 필름이 주는 단순함 역시 영화 전체의 간결미를 잘 살려내었다. 윤동주의 시가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우리가 그가 느낀 '부끄러움'에 깊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의 꿈과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의 용기를 가지지 못한,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이들이 느낄 부끄러움에 대해 시인 윤동주는 담백한 문체로 아름다운 시를 썼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는 '우리'의 시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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