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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의 영화관/별당의 영화정리

[영화 추천]살인의 해부(1959), 법정 영화의 바이블: 첨예한 논리와 가슴 떨리는 심리전


Anatomy of A Murder

영화 <살인의 해부> 포스터

감독: Otto Preminger 
주연: James Stewart, Ben Gazzara


대학생 신분인 나에게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이버강의 대체는 교우관계를 맺을 수도 취미생활을 누릴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동안 리뷰도 못하고 있었는데 짧게나마 영화 리뷰를 올리기로 결정하고 오랜만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웃기게도 이번 영화는 전공 수업으로 보게 된 영화로 1959년에 나온 흑백영화이다. 160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과 유튜브 영화의 심각한 오류 때문에 완전히 집중해서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해부'라는 봉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완전 다르다. '살인의 해부'는 법정 영화로, 자신의 아내를 강간한 바텐더를 총으로 쏴 죽인 육군 중위 매니언과 그를 변호하는 비글러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미국의 재판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대부분은 법정에서 벌어지는 법률 공방에 집중한다. 실제로 법정에서는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고 증인을 압박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영화의 장면은 서스펜스를 높이고 영화를 재밌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변호사와 검사의 논리싸움은 관객이 영화에 깊이 빠져들 만큼 정교하다. 마치 두 검사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합을 겨루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또한 관객의 체력을 위해 사이사이 유쾌한 농담을 집어넣어 긴 러닝타임 동안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게해준다.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법정 공방 뿐만 아니라 법조인의 윤리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라는 것이다. 법정은 기본적으로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법조인은 돈을 받고 고용되는 직업으로 변호를 잘했을 경우 명성과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즉, 진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진실과 반대되는 논리를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진실을 가려내는 순수한 법정을 구성하는 인물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변호사와 검사는 모두 사건의 진실보다 그 외적인 면 때문에 재판에 임한다. 우선 비글러가 이 사건을 맡은 이유도 생활비가 부족해서였다. 매니언이 변호사 선임비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이자 곤란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비글러가 매니언을 번호하던 논리는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즉, 신이 살인을 저지를 의도를 갖지 않았음에도 아내가 강간당했다는 충격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관객은 매니언과 그의 변호사 비글러의 시점에서 재판을 관망하기 때문에 매니언과 비글러를 응원하고 매니언이 '거부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매니언이 아내와 갈등이 있었고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매니언의 행동이 정말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의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며, 무죄 판결 후 매니언이 '거부할 수 없는 충동'으로 변호사 선임비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매니언의 도덕성에 의문이 생긴다. 검사 역시 변호사의 논리와 돌파구에 사용되는 판례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르는 척을 해왔다는 면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명성과 업적에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영화를 본 것은 수업이 한창이었던 5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난 지금 이 수업의 성적이 나왔다. 준비를 많이 안 했던 수업이지만 좋은 점수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미국과 한국의 법체계는 많이 다르다. 미국이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영화에서 '12명의 어떻게든 사람이 만장일치로 결과를 내는 신기한 제도'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매우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나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토의를 통해 만장일치의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가장 잘 어울리는 법 체계이다. 배심원을 설득해야하기 때문에 법조인들은 일반 시민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수사법이 발달하게 된다. 또, 원고나 피고의 이미지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한다. 따라서 미국 재판은 한국 재판보다 더 극적이고 센스 넘치는 토론의 장이 된다. 영화 <살인의 해부>는 그런 미국의 법정을 잘 그려낸 영화이며 고전 법정 영화로써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별!점: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