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영화에 빠져들고 영화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된 점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정말 많고 고전까지 모두 챙겨보기 위해서 스쳐가는 영화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새로 개봉하는 양산형 영화는 거르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예고편이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면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됐다. 거기다가 우리에겐 넷플릭스와 왓챠, 그리고 유튜브라는 좋은 친구가 있지 않은가? 이는 절대 최근 개봉하는 영화만 리뷰하는 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전을 사랑하는 필자의 고약한 취향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고약한 취향 떄문에 필자의 리뷰에는 한국 영화가 많이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 영화가 작품성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떨어졌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영화 산업이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앞서 말한 '고전'은 대부분 서양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영화는 필자에게 큰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 영화야말로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가 해외 코미디쇼를 볼 때 우리는 전혀 웃기지 않은데 외국인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어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이는 그 나라 사람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 역사, 사건들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미국의 앨러베마의 한 청년의 삶을 다룬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를 볼 때, 미국의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로 대표되는 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1900년대 중, 후반 격동의 미국이 아닌 우직한 포레스트의 코믹한 성장기로 보일 뿐이다. 이와 똑같이 한국 영화에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 코드가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장점을 아주 잘 살려냈다.

영화 <엑스트>는 간단한 플롯으로 구성된 영화이다. 만년 백수인 용남이 어머니의 칠순잔치 날 발생한 생화학테러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도망치는 이야기이다. 용남은 칠순 잔치가 열린 행사 건물에 근무하고 있던 과거의 짝사랑녀, 의주와 함께 대학 시절 암벽 등반 동아리에서 익혔던 기술로 연기로 된 생화학가스를 피해 높은 곳으로 대피한다. 두 번이나 구조될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과 학생들에게 구조 기회를 양보한 둘은 시민들이 보낸 드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생존에 성공한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아무래도 코미디에 중심을 둔 영화다보니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창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소재가 매우 신선했다. 암벽 등반이라는 소재가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으며, 건물 외벽을 활용한 암벽 등반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선하고 긴장감있었다. 생화학가스를 피하기 위해 오로지 위라는 방향으로 쉼없이 올라가는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어 답답하거나 늘어지지 않았고, 두 주인공이 희생하는 부분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사실 한국형 재난영화는 천만 쓰레기(ㅎㅇㄷ)이후로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한국형 재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능한 공무원이나 이기적인 민폐 캐릭터도 없었으며 정부의 대응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코미디는 한국적인 요소를 잘 사용하여 관객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해병대전우회 택시기사님이었다. 용남의 아버지가 테러지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지만 택시기사는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운행을 거부했다. 하지만 용남 아버지의 가족이 해병대인 것을 듣자마자 경례를 하며 바로 사고지역까지 운행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여러 번 돌려봐도 재미있는 장면인데, 과연 이 해병대 출신이 사회에서도 끈끈한 전우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배우에 대해 언급하자면조정석의 바보 같으면서 자존심만 센 연기는 여전히 신선했고 윤아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윤아가 정극까지 잘 연기할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한국형 코미디 연기는 충분히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한국의 정서를 잘 담아냈다는 점은 코미디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사실 이 영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고 중간에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리뷰와 의견을 짬뽕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엑시트>가 청년 실업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필자 역시 이에 대해 동의한다. 사실 초반에는 조정석을 지질하게 만들기 위한 설정으로 받아들였지만 영화의 많은 요소가 청년 실업과 관련이 있다. 우선 용남과 의주가 모두 이상적인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용남은 의주가 일하는 건물에서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열기 전에 당당히 회사에 합격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의주는 행사장에서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직함만 부점장이지 정직원처럼 일하고 있으며, 점장에게 교제를 강요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용남과 의주가 연기를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이 위라는 것이다. 보통 경쟁사회를 보고 위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 적자생존의 사회라고들 말한다. 즉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두 인물이 할 수 있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다가 연로한 부모님과 어린 학생들까지 먼저 챙겨야하는 청년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 보인다.

엑시트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코미디 덕분에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청년실업이라는 메시지를 담을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재난대피교육방송 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만큼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준 행동들이 여타 다른 재난 영화보다 이성적이고 이해할 만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영화 <엑시트>는 오랜만에 봤던 시원시원하고 유머러스한 영화였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별!점: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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