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영화 정보
감독: 조성희
출연: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러닝 타임: 136분
<승리호>는 개봉 전부터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작품이다. 24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나 송중기와 김태리 같은 정상급 배우의 출연도 <승리호>가 주목받는데 한몫했지만,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최초의 ‘한국산’ SF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이었다. 제대로 만들어진 SF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던 한국에서 우주가 배경이 되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사실은 많은 영화 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새로운 도전은 항상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질인다. 처음 <승리호>의 예고편을 봤을 때,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인 심정이었다. 만약 <승리호>가 큰 성공을 거둔다면, 한국 영화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다양성을 확보할 좋은 기회를 얻는 반면, 실패한다면 한국의 IMAX 발전을 정체되게 만든 <7광구>처럼 한국 영화의 우주 진출이 더 늦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승리호>는 넷플릭스 전체 영화 1위를 할 정도로 여러 나라에서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흥행과 다르게 작품성에서는 몇몇 아쉬운 점이 <승리호>에 남아있다.

우선 장점부터 살펴보자. <승리호>의 가장 큰 장점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줄 수 있을만큼 뛰어난 우주 액션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은 근래 관람했던 우주 영화 중 가장 뛰어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진 공격용 드론과의 전투는 리뉴얼된 <스타트랙> 시리즈가 생각날 정도로 박진감 있었다. 승리호를 비롯한 우주선의 디자인과 우주 배경은 CG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록 디테일하고 사실적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우주 액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VFX기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2017년에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과 2019년에 개봉한 <백두산>이 한국 VFX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두 영화 모두 디테일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CG티가 많이 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21년 <승리호>는 앞서 나왔던 부정적인 평가를 일축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나온 것 같다. 이렇게 수준 높은 CG가 할리우드의 1/10의 비용으로 완성됐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가성비 높은 기술이 있다면, 한국 사정에 맞춰도 수준급의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는 좋은 신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승리호>에는 시각효과 외에 눈에 띄는 장점이 없다. VFX를 제외한 <승리호>에는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매력없는 캐릭터, 지겹게 반복되는 K-무비의 왕도 밖에 남지 않는다. 영화를 볼 수록 제작진이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나 설정의 디테일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가장 핵심이 되는 ‘도로시’, ‘꽃님이’의 능력 설정이다. 꽃님이는 선천적인 뇌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나노봇의 부작용으로 주변의 나노봇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는다. 이 설정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설정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 영화는 어떠한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꽃님이가 나노 로봇을 조종하는 원리를 뭉퉁그려서라도 설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노기술과 꽃님이를 통한 화성 테라포밍은 영화의 배경이 100년 뒤의 미래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꽃님이가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위기에 처한 승리호 선원들을 도움을 줄 때마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무적의 능력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극의 개연성과 서스팬스를 파괴한다. 마지막 플롯의 반전이 허무했던 이유도 승리호의 위기가 꽃님이의 능력 덕분에 해결될 것을 관객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역시 빈약하다. 스토리를 중심점인 태호조차 설정 부족으로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 태호는 돈을 악착같이 버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저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나오지만, 사실 3년 전 사고로 우주를 떠돌고 있는 순이를 찾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음이 영화 중반부에 나온다. 관객은 태호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태호의 과거 행동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껴야한다. 그러나 플롯의 구성과 송중기의 연기는 태호의 돈미새 연기에 중간점을 쉽게 찾지 못하여, 태호의 캐릭터가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주연급의 매력적인 캐릭터인 ‘타이거 박’이나 ‘장 선장’에 대한 설명이 무(無)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다. 영화는 마약 조직에 거물이었던 타이거 박이 꽃님이에게 많은 애정을 가진 이유나 승리호 선원의 결성 과정 같은 중요한 설정까지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이런 설정 유기는 영화의 개연성을 느슨하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은 설정은 이야기의 흐름에도 영향을 준다. 영화는 주요 인물의 과거를 모두 회상신이나 대사를 통해 설명하는 세련되지 못한 방식을 사용한다. 극 중간에 주된 흐름과 엇나간 이야기를 시청각을 동원하여 설명하니, 영화의 밀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낮아진 밀도를 채우는 것은 K-영화의 ‘특징’인 신파와 저질 개그이다. 한국 영화에서 어린아이가 등장하면 눈물과 똥방귀 개그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신파를 필두로 하는 영화가 아닌 만큼 최근의 한국 영화에 비해 신파를 절제했으나 딸을 잃은 아버지의 후회와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의 등장에서 신파의 기운을 지울 수 없다.
<승리호>가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승리호>가 보여준 기술적 승리와 이를 뒤따를 새로운 장르의 개척을 생각하면 2021년의 <승리호>는 큰 의미를 갖는다. <승리호>는 봉준호의 <기생충>가 한국 영화의 정점일 수도 있을거는 나의 생각이 단지 기우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준만큼 가치가 높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안 좋은 습관을 그대로 답습한 덕분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때문에 <승리호>는 한국 SF 영화'만'의 희망일 수밖에 없다. 가성비 높은 기술의 발전은 좋지만, 기술만 있다면 영화는 포트폴리오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후로는 눈부신 껍질뿐만 아니라 속도 꽉 찬, 그런 SF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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