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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의 영화관/별당의 영화정리

[영화 정리]저수지의 개들(1992),헤모글로빈의 시인은 이렇게 시작했다

<Reservoir Dogs>

영화 &lt;저수지의 개들&gt;의 포스터
영화 정보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하비 케이틀, 팀 로스
러닝타임: 99분


나는 처음부터 정보를 쏟아내는 영화를 볼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나는 사람을 기억할 때 디테일한 부분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해 사과하는 일이 다반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화면에서 사람들이 초반부터 정보를 와르르 쏟아내면, 나는 분위기로 등장인물을 기억하는 동시에 대사나 자막으로 나오는 디테일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OTT 플랫폼에서야 돌려보기가 가능하지만, 영화관에서는 정신줄을 바짝 잡아야 한다. <저수지의 개들> 역시 초반에 정보가 쏟아지는 영화 같았다. 등장인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기 때문에 관객은 첫 플롯인 식당에서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0분 동안 이어지는 질펀한 노래 해석과 웬 할아버지의 주소록 타령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모든 인물의 코드 네임을 알게 되는 영화 중반 정도이다. 이런 대담한 플롯을 사용한 사람은 이 영화로 데뷔한 신인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등장 장면

<저수지의 개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다. 폭력성의 쾌감과 짜릿한 대사들, 정교한 플롯 구성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자극적인 장면들이다. 셔츠까지 피로 물든 사람들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흥분시킨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본질은 폭력의 오락화라고 할 수 있다. 타란티노가 연출하는 폭력은 일반적인 기준을 초과한다. 붙잡은 경찰관을 고문하는 장면이나 <킬 빌>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신체절단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폭력과 공포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관객이 폭력이 주는 불쾌감을 넘어 그 속에 있는 오락성을 느끼는 이유는 영화 속 폭력을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저지르는 폭력의 대상이 도덕적으로 부적격한 인물이거나, 폭력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인물로 설정되는 것은 타란티노 영화의 공식처럼 되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사람에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도 그의 작품 전반에 깔린 폭력 때문이다. 앞서 말한 정당화를 받아들인다면, 폭력이 주는 흥분을 흡수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격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팀 로스라는 배우를 제대로 보게된 영화

영화를 다 본 후 곱씹어 본다면 <저수지의 개들>은 연출 뿐만 아니라 서사적으로도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초, 중반은 ‘배신자가 누구인가’를 찾아내는 추리물의 성격을 띤다. 관객은 창고의 도둑들과 배신자가 누구인지 추리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첫 플롯의 10분으로 정신없게 시작한 관객은 미스터 핑크가 등장해서야 그들이 서로를 암구호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전까지는 오히려 미스터 오렌지가 미스터 화이트를 래리라고 부르는 게 가장 큰 정보였다. 그렇게 영화는 화이트와 블론드의 과거를 차래로 보여주며 관객과 추리게임을 한다.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미스터 오렌지가 배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후반부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미스터 오렌지가 어떻게 도둑들을 속일지 집중하는 마피아 게임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이때부터 영화는 미스터 오렌지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과거를 엔딩 직전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앞서 보여준 세 번의 과거 장면이 맞물려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 긴장감은 배가 된다.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보여준 플롯의 맞물림의 그가 가진 뛰어난 서사의 구성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두 번의 오스카 각본상과 한 번의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명장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무대 잡역부, 혹은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다. 그의 첫 작품인 <저수지의 개들>에서 보여준 대담함은 괴짜스러운 그의 성격도 있지만, 밑에서부터 올라온 자의 자신감 덕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첫 영화의 첫 대사를 감독 스스로 시작하는 대담함은 오래동안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