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누구나 그 시절의 흑역사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 시절’은 지극히 주관적인 단어지만, 나의 ‘그 시절’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첫 연애를 하기 전까지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다른 동급생들 못지않게 강했지만, 그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상대방이 그 감정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수많은 흑역사를 남겼다. 올바르게 표출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 깊숙한 곳에 고여 썩어 들어갔다.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슬퍼하며 ‘내가 사라진다면 나를 봐줄까’라는 오글거리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뛰어난 천성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많은 만남을 해온 사람은 나의 ‘찌질의 역사’에 공감 못하겠지만, 많은 청소년기를 겪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확신한다. 약 250년 전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문학의 대가인 괴테가 25살의 젊은 나이에 집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우리처럼 바보 같은, 그러나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해야 했던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는 베르테르의 사랑을 읽으며, 그 시절의 뜨거운 감정과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그의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책에서 베르테르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자연주의'라는 단어는 베르테르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단어다. 베르테르는 항상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양했다. 베르테르는 시끌벅적한 도시보다 한적한 교외를 좋아했으며, 그가 머문 작은 마을, 발하임에서 좋아했던 공간은 모두 자연적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반면 그는 인간 중심적인 어떤 일에도 쉽게 염증을 느꼈다. 베르테르는 허울 좋은 사업이나 연구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일이라고 지적했고, 자연과 스스로의 내면의 욕망에서 자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로테를 떠났을 때 잠시 맡았던 공직에 쉽게 질렸던 것도 이러한 그의 천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베르테르는 제목처럼 '젊은' 나이였고,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가장 자연적이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이었다.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알게 된 로테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로테 역시 베르테르의 관심을 거부하지 않았고, 베르테르는 로테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책을 읽으면서 베르테르가 로테의 제스처를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로테가 베르테르에게 말했던 "클롭슈토크"라는 말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암호였다고 한다(그린라이트 뿌슝빠슝). 로테에게 마음을 빼앗긴 베르테르에게 가장 큰 산은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베르테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로테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갔다. 심지어 그가 로테를 사랑함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정도로 상황을 통찰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로테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지내던 베르테르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알베르트가 로테의 곁으로 돌아오면서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만남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로테에 대한 끌림과 약혼녀의 남자 친구에게도 친절히 대하는 알베르트의 태도에 로테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동시에 알베르트에 대한 묘한 질투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알베르트의 등장 이후 베르테르의 삶은 변곡점을 찍게 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한 생각이다. 알베르트가 나타나기 전, 베르테르는 로테와 함께 한 목사 부부를 만나는데, 그들과의 토론에서 베르테르는 우울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내세운다. 그는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주변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한심한 일이며, 인간의 감정은 조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밝은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권총으로 인해 시작된 알베르트와의 언쟁에서 베르테르는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다"며 감정의 "한도를 넘으면 당장에 파멸해버리고" 만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베르테르가 두 토론에서 모두 자살(우울증)을 열병에 걸린 것과 비교한다는 점이다. 서로 완전히 대비되는 주장에 같은 상황을 예시로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습은 베르테르의 감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이성적 논리에 대한 허점 또한 보여준다. 알베르트와의 논쟁 이후, 베르테르는 로테를 떠나기로 하고, 다른 한 도시에서 공직생활을 한다. 그러나 상관과 계속되는 마찰과 허례허식에 대한 염증으로 그는 약 9개월 만에 로테가 사는 마을로 돌아간다. 로테 곁으로 돌아간 그였지만, 이미 신혼 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로테와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기로 하였다. 여기에 베르테르와 친분이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불상사까지 겹치자 베르테르의 ‘마음의 조화’는 어긋날 대로 어긋난다. 로테에게도 키스를 통해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달했지만, 로테는 그런 베르테르를 밀어낸다. 이에 낙심한 베르테르는 결국 권총으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의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사람은 베르테르의 죽음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베르테르가 꼭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것 같다. 나 역시 베르테르의 자살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제 3자가 봤을 때, 베르테르의 죽음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베르테르는 사랑의 열정 때문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열정이라는 것은 언젠가 식기 마련이고, 그때가 오면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평온함으로 돌아온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마음이 유별났고, 그가 로테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로테의 상황을 인지하고도 로테의 연인이라는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나의 시선으로는 어리석어 보일 수밖에 없다. 베르테르가 깔끔하게 생을 마감할 수 없었다는 점도 자살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베르테르가 자신을 향해 발사한 탄환은 그를 즉사시키지 못했다. 베르테르는 머리통이 날아간 채로 하루를 더 살았다. 비록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반 송장이 된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던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 생을 마감한 것은 (베르테르가 생각하기에) 고결한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가장 원하지 않은 일 일 것이다.
그러나 베르테르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책에서 확실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그 이유를 톺아보아야 우리는 베르트르를 이해할 수 있다. 베르테르가 자살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로테의 태도이다. 로테가 베르테르를 대하는 태도는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로테 역시 베르테르에게 마음이 있었다. 약혼자가 있음에도 파티에서 남자 친구를 사귄 것이다! 알베르트가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로테는 베르테르가 자신의 집에 방문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저지한 적이 없다. 알베르트가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기를 요청한 후에야 베르테르를 멀리하려 하지만, 여전히 베르테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친구로서 친분을 갖는 것이 어떻냐며 설득한다. 베르테르가 차라리 아버지나 오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로테에게 그녀의 설득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테만을 바라던 베르테르에게 그녀의 설득은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베르테르가 자살한 두 번째 이유는 인간 사회 제도를 혐오하는 베르테르의 선천적 기질 때문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에 허무를 느꼈던 베르테르는 공직 생활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위신 같은 사회적 관념에도 염증을 느꼈다. 베르테르가 죽기 직전에 쓴 편지는 베르테르가 로테와의 관계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알베르트가 당신의 남편이라는 것, 그것이 무어란 말입니까? 남편! 그것은 오직 이 세상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는 죄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남편의 팔에서 내 팔 속으로 뺴앗아온다는 것이 말입니다. 죄라구요? 좋습니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에게 벌을 주겠습니다. 나는 그 죄의 천국 같은 기쁨을 남김없이 맛보는 동시에 생명의 그윽한 향기와 힘을 내 가슴속 가득히 들이마셨습니다. 당신은 이순간부터 저의 것입니다!" ...200pg
베르테르는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살인을 저지른 머슴과 로테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파면당해 미쳐버린 남자아이를 보며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 자신의 사랑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두 인물과의 만남은 그가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가 됐을 것이다.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결합이 인간 사회의 법칙과 제약을 뛰어넘어야지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그 사이에 있는 방해물은 인간의 육체였다. 그렇게 베르테르는 자살로써 사회덕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안타까운 감정이 리뷰를 쓰며 더욱 커진 것 같다. 자연과 한 여자를 사랑한 젊은이의 죽음은 어느 시대이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르테르의 미숙함이 예전의 나를 닮아있어 공감이 잘 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공감’이 잘 되는 책이다. 편지로 되어있는 서술 방식은 독자가 온전히 베르테르의 입장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생경한 표현력과 격동적인 감정 묘사는 25살 괴테의 문학적 미숙함을 보여주기보다 베르테르의 요동치는 감정을 부각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죽기 직전의 베르테르의 로테를 향한 마음은 사랑이 아니었다. '성스러운 계시를 눈으로 보고서 믿음으로 충만해졌던 신자가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점점 잃어'간 것처럼 그의 마음은 한없이 피폐해져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 때 느껴지는 씁쓸하고 저릿한 감정이 베르테르에게 가득 차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그의 자살은 감정적이었다고 보이며, 위에 나열된 자살의 이유들은 불완전한 베르테르의 논리처럼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한 없이 정렬적이었던 베르테르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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